경기는 나쁜데 집값은 오른다?
2026년 한국 경제의 4가지 역설
혼돈 속에서 길을 찾다
우리는 경제적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많은 이들이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35인의 국내 최고 경제 전문가들이 모여 2026년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진단한 책, '2026 한국경제 대전망'이 길잡이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이 책은 다가올 한국 경제를 ‘파용운란(波涌雲亂), 천붕유혈(天崩有穴)’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합니다. 이는 '물결이 거세게 솟구치고 구름이 어지러운 혼돈의 국면이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의미입니다. 거대한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통찰이며,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 글의 목적은 단순히 경제 지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서 가장 놀랍고,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핵심 인사이트 4가지를 뽑아 그 이면에 숨겨진 새로운 경제의 작동 원리를 풀어드리고자 합니다. 낡은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 우리가 알아야 할 새로운 현실은 무엇일까요?
거대한 괴리
실물 경제는 약한데, 자산 시장은 강하다
2026년 한국 경제를 관통할 첫 번째 역설은 바로 ‘실물 경제’와 ‘금융 자산’ 시장의 거대한 괴리(divergence) 현상입니다. 이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지적처럼, 일반 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시장은 오히려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전통적으로 자산 가격은 실물 경제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것을 넘어, 넘치는 글로벌 유동성과 저성장 시대의 투자처를 찾는 자본의 쏠림 현상이 실물 경제의 펀더멘털을 압도하는 '자본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의 체감 경기와 자산 시장이 전혀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모든 경제적 역설의 출발점입니다.
"내년 경제는 실물에서는 좀 약한 모습일 것이고 금융, 주식시장, 부동산시장은 강한 모습을 보일 것...실물과 금융 자산의 괴리가 핵심 키워드"
— 이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부동산 미스터리
경기는 나쁜데 왜 집값은 오를까?
경기 침체의 한파 속에서 부동산 시장만큼은 '나 홀로 여름'을 즐길 것이라는 전망은 더 이상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이는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 불균형이 단기적인 경기 변동을 압도하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상수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들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최근 결혼 인구와 전체 가구 수가 꾸준히 늘고 외국인의 주택 매입까지 활발해지면서 근본적인 수요는 계속 팽창하고 있습니다. 반면, 주택 착공 및 신규 공급 물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처럼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바로 거시 경제의 부진 속에서도 집값 상승이라는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핵심 동력인 셈입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여전히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다...거시 요인과 규제에 의해서 일시적인 변동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상향하는 트렌드를 멈추기는 좀 어렵다는 생각"
—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
새로운 국제 질서
미중 갈등이 만든 의외의 기회
'트럼프 1기'와 다가올 '트럼프 2기'의 대외 정책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과거 미국이 중국만 집중 견제할 때는 한국이 반사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기치 아래 모든 국가를 압박하는 구도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더욱 복잡해진 국제 질서는 한국에게 위기인 동시에, 지정학적 지형을 활용한 ‘의외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역설적인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터리 산업입니다. 이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강력하게 규제할 경우 한국 기업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기회는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교수는 "배터리 산업은 유럽의 강력한 환경 제재의 반대급부로 수혜를 입은 탓이 크기 때문에 그 자체로 경쟁력이 크지는 않다"고 지적하며, 이 기회가 압도적인 기술 우위가 아닌 지정학적 요인에서 비롯된 조건부 기회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한국이 아슬아슬한 전략적 줄타기를 통해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국제시장에서) 막는다면 (남는 건) 한국밖에 없다. 기회가 존재한다"
— 이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조선 산업 역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보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2026년부터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로 불리는 한미 조선 협력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는 글로벌 조선 시장의 전반적인 수요 약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조선업계가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강력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이 역시 혼돈의 국제 질서 속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솟아날 구멍’입니다.
AI 인프라의 역설
세계 6위 인프라, 35위 활용 능력
한국의 인공지능(AI) 현주소를 보여주는 데이터는 충격적입니다. 성효용 성신여대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한국의 AI 인프라 수준은 세계 6위로 최상위권에 속하지만, 정작 AI를 실제로 운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35위에 그칩니다.
이는 우리가 '최첨단 고속도로를 깔아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격차는 단순한 비효율을 넘어, 저성장 궤도에 진입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마지막 동력으로 여겨지는 AI 전략 자체를 좌초시킬 수 있는 중대한 위협입니다. 아무리 좋은 인프라를 갖추어도 이를 산업 현장 곳곳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인프라 구축을 넘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속도와 수용 능력’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 역설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스스로의 힘으로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위기 속에서 당신이 발견할 '솟아날 구멍'은 무엇인가?
실물과 자산의 괴리, 경기 침체 속 부동산 상승, 미중 갈등이 만든 조건부 기회, 그리고 AI 인프라의 역설까지. 이 4가지 놀라운 전망들은 공통적으로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숨어있다'는 ‘천붕유혈(天崩有穴)’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혼돈의 시대는 낡은 공식을 파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질서와 기회를 잉태합니다.
다가올 2026년, 낡은 경제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이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당신은 위기 속에서 어떤 '솟아날 구멍'을 찾아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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