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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거품 논쟁,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현재 AI 붐이 과열된 자산시장과 실물 성과 간의 간극으로 인해 거품 논란이 일고 있다.
AI 거품 논쟁,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Photo by Nik / Unsplash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거대 언어 모델과 생성형 AI를 앞세운 'AI 붐'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산시장의 과열과 실물 성과 간의 간극을 이유로 "또 하나의 기술 거품이 아니냐"는 의문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일부에서는 AI를 전기·인터넷과 같은 일반 목적 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로 보며, 단기 조정을 거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 구조를 바꿀 기반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논쟁의 핵심은 단순하다. 지금의 AI 붐을 "거품"으로만 볼 수 있는가, 아니면 거품과 인프라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 구조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투자와 기대는 폭발...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

AI 거품론이 힘을 얻는 첫 번째 배경은 성과 측정의 빈칸이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AI 파일럿 프로젝트를 도입하고, 각종 행사에서는 "업무 생산성이 몇 배로 높아졌다"는 시연이 이어지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계량 가능한 지표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고 있다.

  • 여러 기업이 문서 작성, 회의록 요약, 코드 생성 등 다양한 영역에 AI 도구를 시험 도입했지만,실제로 얼마나 비용을 줄였는지, 어떤 업무에서 얼마만큼 시간이 단축됐는지를 수치로 공개한 사례는 많지 않다.
  • 클라우드 비용과 GPU 사용량은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장기적인 투자 회수율(ROI)을 평가한 데이터는 제한적이다. 이는 공장 설비를 모두 최신 기계로 교체하고도, 생산량·불량률·인건비 등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측정하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다.

의존성 문제도 거품론의 논거로 거론된다.

현재 AI 인프라와 데이터, 핵심 모델은 소수의 빅테크 기업에 집중돼 있다. 중소기업이나 개별 국가는 이들이 제공하는 클라우드·API·플랫폼 위에서 AI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력을 쓰기 위해 소수의 발전회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요금 구조와 장기 계약 조건을 충분히 알기 어려운 에너지 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돈은 이미 크게 움직였지만, 그만큼의 실증 데이터가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AI 거품"이라는 표현이 소환되고 있다.


'생산성 패러독스'와 일반 목적 기술의 시간차

다만 이 현상을 곧바로 "AI 무용론"이나 "순수한 투기 거품"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그 배경에는 IT 투자 역사에서 반복된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첫 번째는 생산성 패러독스(productivity paradox)다.

대규모 IT 투자가 진행됐음에도, 통계상 생산성이 즉시 개선되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업이 정보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조직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 평가 방식이 그대로인 상태에서는 기술 도입 효과가 통계에 늦게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AI 역시 비슷한 구간에 들어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많은 조직에서 AI는 아직 "기존 업무 흐름에 덧붙인 보조 도구"에 머무르고 있다.
  • 회의록 정리, 이메일 초안 작성, 코드 일부 자동 생성 등 개별 작업 단위를 돕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전체 가치사슬이 바뀌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AI가 일반 목적 기술(GPT)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일반 목적 기술은 전기·인터넷처럼 경제 전반의 생산 방식을 바꾸는 기반 기술로, 본격적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전기 도입 초기, 기존 증기기관 공장 설계를 그대로 둔 채 전기 모터만 교체했을 때 생산성 향상이 제한적이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AI도 아직은 이러한 "느린 혁명"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 자체의 잠재력과, 그 잠재력이 통계로 드러나는 시점 사이에는 구조적인 시간차가 존재한다.


인프라 집중과 비용 구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익계산서'

AI 거품 논쟁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인프라 집중도와 비용 구조의 불투명성이다.

현재 AI 붐은 GPU와 대규모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에 대한 전례 없는 자본 지출(capex) 확대를 동반하고 있다. 자본 지출은 공장·발전소 등 대형 설비를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초기 투자로, 한 번 규모가 형성되면 시장 구조를 장기간 제약하는 특성이 있다.

문제는 이 막대한 투자가 소수의 글로벌 사업자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 특정 GPU 제조사가 고급 칩 공급을 사실상 주도하고,
  • 소수의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 사업자가 AI 학습·서비스 인프라를 제공하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중장기적으로 가격·접근성·경쟁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해 거대 모델의 학습 비용은 대략적인 규모가 알려져 있지만, 실제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의 단위 비용과 마진 구조는 대부분 비공개다.

  • 토큰당 비용,
  • 사용자당 평균 매출과 이익,
  • 장기 유지보수·재학습에 필요한 비용 등 핵심 정보가외부에서는 정밀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결국 투자자와 고객, 정책 당국 모두 '보이지 않는 손익계산서'를 추정에 기댄 채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거품 논쟁에서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닷컴·암호화폐·메타버스와 무엇이 같고 다른가

시장 참여자들은 지금의 AI 붐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기술 거품 사례와 비교한다. 대표적인 것이 닷컴 버블, 블록체인·암호화폐 붐, 메타버스 열풍이다.

  • 닷컴 버블 당시에는 '페이지뷰'와 '가입자 수'가 강조됐지만,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이 검증되지 않은 기업이 다수였다.
  • 블록체인·암호화폐는 탈중앙화라는 이상에 비해일상 생활에서의 활용 빈도와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 메타버스는 대규모 행동 변화를 전제로 했지만,하드웨어·콘텐츠·네트워크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의 AI 시장에서도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 "활성 사용자 수", "호출(쿼리) 수"가 강조되지만,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용이 유료·장기·업무 핵심으로 이어지는지는 불투명하다.
  • 수많은 스타트업이 'AI'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단순한 기능 추가를 넘어 원가 구조 변화나 신규 수익원 창출을 실증한 모델은 아직 제한적이다.

동시에, AI는 과거 거품과 다른 지점도 분명하다.

인터넷·클라우드·모바일 기기 등 이미 자리잡은 디지털 인프라 위에서 구동된다는 점에서,

생태계 자체를 처음부터 새로 세워야 했던 메타버스와는 조건이 다르다.

이는 이미 철도망이 깔려 있는 상황에서 더 빠른 기관차를 투입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선로와 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효율을 높이기 유리하지만, 동시에 기존 운임 체계와 규제, 이해관계의 제약도 함께 안고 가야 한다.


현장의 미시 데이터가 가리키는 변화의 방향

AI 거품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도 있다.

바로 현장 단위에서 나타나는 미시 변화다.

  • 콜센터와 고객 지원, 문서 검토처럼 언어 기반 업무가 많은 영역에서는AI를 활용한 부분 자동화와 상담·작성 보조 도구가 이미 도입되고 있다.
  • 개발 조직에서는 코드 생성·테스트·배포 과정에 AI를 접목해 개발자 1인당 처리량과 리드타임이 달라졌다는 보고가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아직 통계적으로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고,

표본도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과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변화의 조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도시 외곽의 일부 공장에서 시작된 자동화가 몇 년 뒤 산업 전반의 기준이 되듯,

현재는 일부 기업의 실험으로 보이는 AI 활용이

향후 넓은 범위의 표준 관행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거품이냐 아니냐'에서 '어느 부분이 거품인가'로

이처럼 표면과 심층의 움직임이 동시에 관찰되는 상황에서,

단순한 이분법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 자산시장과 일부 스타트업은 고전적인 거품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 반면 인프라와 업무 구조, 조직 운영 방식에서는일반 목적 기술 확산 초기에 나타나는 변화가 서서히 관찰된다.

핵심 질문은 "AI는 거품인가, 아닌가"라기보다,

"어느 층위에서 거품이 형성되고 있고,
어느 층위에서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는가"

로 옮겨가고 있다.

표면의 주가와 기대만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아래에서 진행 중인 조직·업무·인프라의 변화를 함께 볼 것인지는

투자자와 기업, 정책 당국 모두가 앞으로 선택해야 할 관점이다.


AI 거품 논쟁이 남긴 과제

역사적으로 많은 '거품의 시대'는 동시에 새로운 인프라가 깔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철도, 전기, 인터넷이 그랬다.

AI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자산 가격과 기대가 과열돼 보일 수 있지만,

심층에서는 업무 방식과 조직 구조, 산업 규칙이 "AI를 전제로 한 상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가장 큰 위험은

"너무 일찍 들어갔다"거나 "너무 늦게 나왔다"는 투자 타이밍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진짜 쟁점은 어느 층위가 거품이고, 어느 층위가 기반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AI 전체를 하나의 단일한 거품 서사로만 소비하는 태도에 가깝다.

AI 거품 논쟁은 결국,

기술과 자본, 인프라와 생산성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시대에

어떤 렌즈를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