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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열풍 뒤에 숨은 수혜주들… GPU만이 승자는 아니다

AI 열풍 속에서 GPU 외에도 하이퍼스케일러, 반도체, 메모리,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산업이 수혜를 보고 있다. LLM의 수요 증가로 인해 기업들은 매출 구조를 재편하고 있으며, AI 관련 기업의 실적 발표에서 AI 언급이 급증하고 있다.
AI 열풍 뒤에 숨은 수혜주들… GPU만이 승자는 아니다
Photo by Mariia Shalabaieva / Unsplash

ChatGPT 등장 이후 전 세계 증시는 이른바 ‘AI 불 마켓’에 진입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소수 빅테크의 시가총액이 단기간에 수백조 원씩 불어났고, 기업 실적 발표 콜에는 "Generative AI", "Large Language Model(LLM)"이라는 단어가 쏟아졌다. 그러나 최근 2~3년간의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트의 중앙 무대를 차지한 소수 스타 플레이어 외에 덜 보이지만 더 넓게 이익을 가져가는 ‘숨은 승자들’이 존재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AI 불 마켓(AI Bull Market)은 ChatGPT 등장 이후 인공지능, 특히 대규모 언어모델(LLM) 관련 기술과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며 형성된 강세장을 의미합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AI 관련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단기간에 수백조 원씩 증가하는 현상을 특징으로 합니다.

LLM은 거대 언어 모델로, 자연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데 특화된 인공지능 기술이다. 시장에서는 편의상 LLM을 포함한 생성형 AI 전반을 ‘AI’로 통칭하지만, 투자 측면에서는 이 LLM 워크로드가 어떤 산업의 매출과 이익 구조를 실제로 바꾸고 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노출 높은 기업, 주가 재평가… “문제는 돈이 어디로 가느냐”

각국 중앙은행과 연구기관, 학계가 최근 발표한 연구들은 공통된 그림을 제시한다. 챗GPT가 공개된 2022년 말 이후, 미국 상장기업들의 실적 발표 콜과 공시에서 AI·생성형 AI 관련 언급 빈도는 급증했다. 특히 정보기술(IT), 통신서비스, 일부 소비재 업종에서 AI 노출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상대적으로 높은 초과 수익률을 기록한 현상이 확인됐다.

다만 이 결과만으로는 “누가 얼마를 벌고 있는지”가 명확해지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GPU 학습 비용, 토큰당 원가, AI 관련 매출과 마진 구조는 대부분 기존 클라우드·소프트웨어 매출에 섞여 보고되기 때문이다. AI가 실제 손익계산서에 어떤 층위로 반영되고 있는지, 외부에서 정밀하게 분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와 학계는 LLM 붐이 일곱 개 축을 중심으로 수익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GPU와 빅테크는 그중 일부일 뿐이며, 그 주변에서 전력·부동산·메모리·소프트웨어·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이 조용히 이익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① 하이퍼스케일러·클라우드… “LLM 시대의 발전소”

우선 눈에 띄는 수혜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등 이른바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 사업자다.

이들은 LLM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GPU 클러스터, 스토리지, 네트워크를 하나의 패키지로 제공하며, “AI 인프라를 전기처럼 빌려 쓰는 구조”를 만들었다.

특징적인 점은 매출 구조다. 기업 고객들은 LLM을 직접 구축하기보다, 클라우드 사업자가 제공하는 API·플랫폼을 사용량 기반으로 이용한다.

이는 전통적인 서버 호스팅과 달리, AI 호출량과 트래픽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매출과 마진이 함께 레버리지되는 구조를 만든다. GPU 공급사와 함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1차 수혜 영역이다.

② GPU·반도체 밸류체인… “모든 모델이 거쳐가는 관문”

LLM 열풍의 또 다른 상징은 GPU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고성능 가속기 공급사의 매출과 이익은 LLM 수요 폭발과 함께 가파르게 상승했다.

여기에 고성능 AI 칩을 실제로 생산하는 파운드리(위탁생산)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을 공급하는 장비 업체도 “조용한 수혜자”로 꼽힌다.

고성능 AI 칩은 최신 공정에서만 생산할 수 있고, 이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파운드리와 장비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힌다.

결과적으로 공정 기술과 장비를 가진 기업들은 LLM 수요 증가에 비례해 안정적인 수주와 마진 개선을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반도체 업종 특유의 경기 변동성과 공급 과잉 리스크는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③ HBM·메모리… “AI 서버 밑단에서 마진 쌓는 조용한 강자”

최근 2~3년 사이,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 중 하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다.

HBM은 LLM을 학습·추론하는 AI 칩 옆에 붙는 고성능 메모리로, 모델 파라미터와 중간 계산값을 빠르게 주고받는 역할을 한다.

AI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HBM 용량과 단가는 동시에 상승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HBM 생산 능력을 갖춘 메모리 업체들은 산업 사이클 회복과 AI 수요가 겹치며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범용 D램 생산 능력보다, AI 특화 메모리 포트폴리오와 대형 고객사와의 장기 공급 계약 여부가 수혜 강도를 가르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④ 데이터센터·전력·냉각… “지도 밖 인프라의 배당 확대”

LLM 열풍의 그늘에는 전력과 냉각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AI 서버 랙은 기존 일반 서버보다 훨씬 높은 전력과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가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데이터센터를 보유해 기업에 임대하는 REIT(부동산투자신탁)와 전력·유틸리티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를 이유로 장기 투자 계획과 요금 체계 조정을 언급하고 있다.

고밀도 랙을 수용할 수 있는 부지와 전력·냉각 설비를 갖춘 데이터센터는 희소성이 높아, 장기 임대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배당 여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GPU나 LLM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AI가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배관과 토지”에 해당하는 인프라로, 중장기 수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⑤ 엔터프라이즈 SaaS·AI 네이티브… “손익계산서를 바꾸는 소프트웨어”

LLM의 능력은 실험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GPT-4와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은 익명 처리된 재무제표만을 보고도 인간 애널리스트보다 높은 정확도로 향후 이익 방향을 맞히는 성능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곧, 이러한 모델을 내재화한 회계·재무 분석, CRM, 고객 응대, 문서 작업용 소프트웨어가 고객의 인건비와 시간 비용을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코파일럿, 각종 콜센터·CS용 AI 보조 솔루션, 재무·법률 문서 분석 툴 등이 등장하며, “AI 기능 사용량에 비례해 과금하는 가격 모델”을 실험 중이다.

전통적인 구독형 SaaS보다, AI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매출이 따라 올라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엔터프라이즈 SaaS와 AI 네이티브 스타트업은 LLM을 실제 현금흐름으로 변환하는 핵심 고리로 주목받고 있다.

⑥ 시스템 통합·IT 서비스… “AI 도입의 현장 시공사”

LLM을 실제 기업 환경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데이터·보안 체계를 고려한 통합 작업이 필수다.

글로벌 컨설팅·IT 서비스 기업과 국내외 시스템 통합(SI) 업체들은 각 산업별로 AI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컨설팅·개발·운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적 발표 콜을 분석하면, AI 도입과 관련된 컨설팅·SI 프로젝트 언급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프로젝트 단위 비즈니스 특성상, 경기 상황과 IT 예산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큰 구조라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AI 관련 SI·서비스 기업의 수혜 강도는

  • 특정 산업(금융, 제조, 헬스케어 등)에 대한 레퍼런스 축적 여부,
  • 클라우드·데이터·보안을 아우르는 엔드투엔드 패키지를 얼마나 갖췄는지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⑦ 콘텐츠·미디어·2차 수혜… “파문을 직접 맞는 산업들”

마지막으로, 텍스트와 이미지, 코드 생산이 핵심인 콘텐츠·미디어·교육·광고·법률·컨설팅 업종은

LLM의 직접적인 파문을 받는 영역이다.

일부 기업은 AI 활용을 통해 기사·보고서·교육 콘텐츠 제작 단가를 낮추거나, 개인화 추천·맞춤형 광고로 단위 매출을 높이는 사례를 내놓고 있다.

다만 연구 결과를 보면, AI 관련 키워드가 포함된 공시·보도자료를 낸 기업들에게 단기 주가 상승 효과가 관측되기도 했지만,

중장기 실적 개선까지 입증된 경우는 아직 제한적이다.

“AI를 쓴다”는 선언과, “AI 덕분에 손익계산서가 구조적으로 바뀌었다”는 실증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셈이다.


“모델이 아니라 손익계산서 지도가 바뀌는 중”

LLM 열풍을 이야기할 때, 시장의 시선은 여전히

엔비디아의 주가 차트, 빅테크의 시가총액, 새로운 모델의 성능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최근 2~3년의 흐름을 밸류체인 전체로 확장해 보면,

LLM 시대의 진짜 승부는 GPU 스펙 경쟁을 넘어,

전력·부동산·메모리·데이터센터·SaaS·서비스로 이어지는 인프라와 현금흐름의 재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AI는 현재,

  • GPU·클라우드·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인프라,
  • HBM·파운드리·장비라는 제조 생태계,
  • SaaS·SI·콘텐츠라는 응용·서비스 층위를 따라

서서히 손익계산서를 다시 쓰고 있다.

“어떤 LLM이 가장 똑똑한가”라는 질문만으로는

이 변화의 전모를 포착하기 어렵다.

최근 연구와 시장 데이터가 던지는 메시지는 보다 단순하다.

LLM 시대의 숨은 승자는, 모델을 만드는 기업만이 아니라
그 모델을 돌리기 위한 인프라와,
그 모델로 손익계산서를 바꾸는 기업 전반이라는 것이다.

AI 산업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시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