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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1975년, 스티브 새슨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 없이 사진을 찍는 혁신적인 장치로, CCD 기술을 활용하여 빛을 전기 신호로 변환했다. 초기 모델은 해상도가 낮고 저장 방식이 오디오 카세트테이프였지만, 이는 디지털 사진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출처 - 조지 이스트먼 박물관

필름 없는 카메라가 열린 디지털 사진 시대

언젠가 집 정리를 하다 보면,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필름 사진이 한 움큼씩 나옵니다.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 부모님의 젊은 얼굴, 단체로 찍은 회사 회식 사진까지.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싶은데, 스마트폰 앨범을 열어 보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진이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 부모님의 젊은 얼굴, 단체로 찍은 회사 회식 사진까지.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싶은데, 스마트폰 앨범을 열어 보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진이 클라우드 저장소 속 어딘가에 쌓여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찍고, 저장하고, 잊었다가, 다시 꺼내 보는’ 이 디지털 사진의 일상은 사실 한 사람의 꽤 기묘한 실험에서 시작됐습니다.

1975년, 미국 코닥(Kodak)의 23세 전기공학자 스티브 새슨(Steve Sasson)이 만든, ‘필름이 필요 없는 토스터 같은 카메라’였습니다.


1. “필름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없을까?”

1970년대 코닥은 필름·현상·인화까지 장악한 거대 필름 제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닥 필름을 사서 코닥 카메라에 넣고, 코닥 화학약품으로 필름을 현상하고, 코닥 인화지에 인화된 사진을 넘겨 보았습니다.

하지만 새슨은 이 회사에 입사한 젊은 전기공학자로서, 사진을 배우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다고 느꼈습니다.

필름을 넣고 촬영하고, 현상소에 맡기고, 인화된 사진을 기다리는 전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신 그는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CCD(Charge-Coupled Device, 전하결합소자)’라는 새로운 전자 부품에 주목했습니다.

빛이 닿으면 미세한 전하 패턴이 생기고, 이 패턴을 숫자로 저장할 수 있다면, 사진을 필름 대신 디지털 데이터 로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죠.

2. 부품은 ‘슬쩍’, 저장은 카세트테이프

새슨의 프로젝트는 정식 예산을 받은 개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코닥 곳곳에서 필요한 부품을 ‘몰래’ 모았습니다.

  • 사용하던 영화 촬영용 카메라에서 렌즈를 떼어 오고
  • 비교적 값싼 디지털 볼트미터에서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를 가져오고
  • 이미 회사에 있던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 키트를 활용해 신호를 처리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1975년의 세계 최초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 는 꽤 기묘한 장치였습니다.

  • 무게: 약 3.6kg (8파운드)
  • 해상도: 100 x 100 픽셀, 흑백
  • 촬영 시간: 셔터 속도 1/20초
  • 저장 방식: 오디오 카세트테이프에 디지털 데이터를 기록
  • 재생: 별도의 ‘플레이백 유닛’으로 데이터를 읽어 TV 신호(NTSC)로 변환해 화면에 띄움

셔터를 누르는 데 걸린 시간은 1/20초였지만, 데이터를 테이프에 옮기고 다시 재생해 TV에 띄우는 데는 약 23초가 필요했습니다.

한 장 찍고, 20여 초를 기다려야 화면에 얼굴이 떠오르는 식이었죠.

3. “얼굴이 엉망이었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1975년 12월, 새슨은 동료 연구원 조이 마셜(Joy Marshall)의 상반신을 찍어 첫 시험 촬영을 했습니다.

테이프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는 “찍혔다”고 확신한 뒤, 연구실로 돌아와 플레이백 유닛으로 재생해 TV에 띄웠습니다.

결과는 묘했습니다.

  • 배경과 머리카락 윤곽은 보이지만
  • 얼굴은 뒤틀려서 사람인지 알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새슨과 동료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수천 가지 이유 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뭔가라도 나온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던 것이죠.

하지만 촬영 당사자인 조이 마셜의 평가는 간단했습니다.

“Needs work(손 좀 봐야겠네).”

이후 회로 연결을 바꾸고 신호 처리를 조정한 끝에, 마침내 사람 얼굴에 가까운 이미지가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가 실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첫 순간 이었습니다.

4. 코닥 임원들이 본 ‘미래’

새슨은 이 기계를 들고 코닥의 여러 부서와 경영진 앞에서 시연을 시작했습니다.

  • 회의실 맨 앞 줄에 앉은 사람을 즉석에서 찍고
  • 카세트를 플레이백 유닛에 넣은 뒤
  • 20여 초 후 TV 화면에 그 사람의 얼굴이 뜨는 장면을 보여주는 식이었습니다.

질문은 대부분 기술이 아닌 ‘미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 “언제쯤 필름 카메라만큼 품질이 좋아질까요?”
  • “컬러도 가능합니까?”
  • “소비자가 살 수 있을 만큼 싸질까요?”

새슨은 연구소에 문의한 뒤 이런 답을 내놓았습니다.

  • 필름(110 필름) 수준의 품질을 내려면 백만 픽셀 이상,
  • 컬러까지 하려면 200만 픽셀 이 필요하다.
  • 현재 시제품은 1만 픽셀(흑백)에 불과하다.
  • 집적도가 2년마다 두 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 을 적용하면,→ 소비자용으로 쓸 만해지기까지 15~20년 은 걸릴 것 같다.

실제 코닥의 첫 소비자용 디지털 카메라 DC40이 시장에 나온 해는 1995년, 정확히 약 20년 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영진의 고민은 또 달랐습니다.

  • “필름도, 인화지도, 현상 화학약품도 필요 없다면, 우리 주력 사업은 어떻게 되는가?”
  • “1100달러나 줘서, 35달러짜리 인스태매틱 카메라보다 더 나쁜 화질을 왜 사야 하지?”

디지털 카메라는 코닥의 비즈니스 모델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기술이었고, 그래서 기술팀의 흥분과 달리 경영진은 조심스러웠습니다.

5. “너무 일찍 온 발명”이 만든 미래

1978년, 코닥은 새슨의 설계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특허 를 획득합니다.

  • 이 특허는 이후 각종 라이선스와 소송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줬고,
  • 2012년 코닥이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이 권리를 매각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
  • 인터넷과 디지털 이미지 공유 문화의 성장
  • CCD/CMOS 센서 기술의 발전

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디지털 사진은 필름을 대체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당시 새슨이 상상하던 해상도와 기능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의 ‘토스터 같은 카메라’는 지금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6. 지금 우리에게 남은 질문이 있다면 , "무엇을 간직하시겠어요?"

이 이야기는 단순히 “코닥이 디지털 전환을 놓쳤다”는 실패담이 아니라,

기억과 기록의 방식이 바뀌는 순간 을 보여줍니다.

50·60세대는 한 세대 안에서 기록 기술이 세 번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 필름 카메라로 유년기를 기록했고
  • 디지털 카메라와 컴팩트 디카로 아이들 성장기를 찍었고
  •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을 저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진을 싸게, 많이 찍을 수 있게 된 대신,

“앨범에 5만 장이 넘게 쌓였는데, 막상 찾고 싶은 사진은 잘 안 보인다”는 감정도 함께 생겼습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 쪽에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흘려보낼 것인가?

연말이든, 생일이든, 오늘 저녁이든,

서랍 속 필름 사진과 스마트폰 속 사진을 한 번쯤 같이 펼쳐 놓고

“우리 가족에게 정말 중요한 장면은 무엇일까?”를 함께 골라 보는 것.

디지털 카메라가 열어 준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지키고 싶은 가치는 어쩌면 그 단순한 질문 하나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