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문어를 알아?
문어, 세 개의 심장으로 바다를 견디는 동물
수억 년 침묵 끝에 드러난, ‘세 개의 심장’이라는 진화의 설계
지구의 바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푸른 수평선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완전히 다른 물리 법칙이 작동합니다. 온도는 낮고, 빛은 희미하며, 산소는 공기 중보다 훨씬 부족합니다. 이 혹독한 환경에서 수억 년 동안 살아남은 생물들은 하나같이 육상 동물의 상식을 비켜가는 생리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문어는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극단적인 사례에 가깝습니다.
지능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몸 안에 “심장이 세 개”나 들어 있다는 점은 오랫동안 해양 생물학자들에게 하나의 진화적 난제로 남았습니다.
왜 어떤 생물은 심장 하나로 충분한데, 문어는 굳이 세 개를 가져야 했을까요?
그리고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문어가 헤엄칠 때, 그 세 개 중 하나의 심장은 아예 멈춰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이 기묘한 생리 구조를 단순한 ‘괴짜 정보’가 아니라,
“산소가 부족한 바다에서 지능과 생존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진화의 설계도”로 다시 읽어보는 시도입니다.
기록이 아닌 ‘몸’이 남긴 단서들
대부분의 고대 문명이나 역사적 존재는 문자나 유적, 기록을 통해 그 흔적을 남깁니다. 하지만 바다는 그런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문어가 언제부터 이런 복잡한 순환계를 갖게 되었는지, 인류는 문어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해부 결과와 생리 실험 데이터, 그리고 바다라는 환경 조건뿐입니다.
바로 이 점이 문어 연구를 하나의 학술적 미스터리로 만듭니다.
연구진은 남겨진 연대기 대신, “몸의 설계도” 자체를 해독해야 했습니다. 심장과 혈관, 피의 성분은 마치 언어학에서 ‘사라진 언어의 문법’을 추적하듯, 보이지 않는 진화의 문장을 대신 증언하는 증거로 취급됩니다.
그렇다면 이 설계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요?
세 개의 심장, 각각의 역할 – 순환계에 숨겨진 삼각 구조
문어의 심장 구조는 크게 세 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가미로 혈액을 밀어 올리는 두 개의 아가미심장
먼저, 문어는 아가미심장을 두 개 가지고 있습니다.
각 아가미심장은 한 쪽 아가미와 연결되어, 산소가 거의 없는 혈액을 아가미로 강하게 밀어 올립니다. 다시 말해, 이 심장들은 “산소 공급선의 초입에서 압력을 걸어주는 보조 펌프” 역할을 합니다.
육상 동물을 기준으로 보면 다소 낯선 구조입니다. 우리는 대개 하나의 심장이 폐와 온몸을 동시에 담당하는 모델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문어에게서 아가미심장은, “입구에서 먼저 밀어 넣고, 출구에서 다시 내보내는 이중 펌핑 구조”의 첫 번째 축에 가깝습니다.
정리하면, 아가미심장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 산소가 거의 없는 혈액을
- 가능한 한 강하게 아가미 쪽으로 밀어 올려
- 산소 흡수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어나도록 돕는다.
온몸을 책임지는 체심장
체심장은 아가미에서 산소를 가득 실어 돌아온 혈액을 받아, 문어의 팔, 내장, 피부 등 온몸 곳곳으로 내보냅니다. 구조적으로는 심방과 심실,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순환계의 메인 엔진에 해당합니다.
체심장의 기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아가미에서 되돌아온 ‘산소 풍부 혈액’을 받고
- 이를 전신으로 강하게 분배하며
- 문어의 고도의 움직임과 신경 활동을 뒷받침한다.
이 둘을 합치면, 문어의 심장 시스템은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산소 부족 혈액 → 아가미심장 2개가 아가미로 강제 펌핑
- 아가미에서 산소 충전
- 산소 풍부 혈액 → 체심장 1개가 온몸으로 고압 분배
즉, 심장 3개는 단순히 “여분”이 아니라,
“입구–가압–분배”로 이어지는 3단 펌프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헤엄칠 때 멈추는 심장
속도를 내는 순간, 본체가 희생된다
여기서 문어의 심장 구조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등장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문어가 평소처럼 해저를 기어 다닐 때는 세 심장이 모두 작동하지만, 제트 추진처럼 물을 강하게 뿜어 헤엄칠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때 체심장이 거의 멈추다시피 하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이 현상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트 추진으로 빠르게 헤엄칠 때
- 몸통(외투부)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강한 압력을 받는다.
- 이 기계적 변화가 체심장의 효율적인 펌핑을 방해한다.
- 그 결과, 전신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문어는 빠르게 피로를 느낀다.
그래서 문어는 진화적으로, “순간 속도”보다 “지속 가능성”을 택한 생물에 가깝습니다.
장거리 이동이나 먹이 탐색을 할 때, 문어가 대개 해저를 기어 다니는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뒤따릅니다.
만약 문어에게 심장이 하나뿐이었다면,
고강도 운동–급격한 심장 기능 저하–빠른 피로의 순환을
과연 버텨낼 수 있었을까?
파란 피와 구리
산소가 부족한 바다의 타협안
문어에게 심장이 세 개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피 자체의 성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철 대신 구리에 의존하는 산소 운반
인간을 비롯한 많은 척추동물은 철(Fe) 기반의 헤모글로빈을 이용해 산소를 운반합니다. 이 단백질은 산소와 결합했을 때 붉은 색을 띠며, 비교적 높은 산소 운반 효율을 보입니다.
반면, 문어의 혈액에는 구리(Cu) 기반의 헤모시아닌이 들어 있습니다.
헤모시아닌은 산소와 결합하면 파란색을 띠기 때문에, 문어의 피는 실제로 푸른빛을 띱니다.
여기에는 뚜렷한 단점도 함께 존재합니다.
- 헤모시아닌의 산소 운반 효율은 헤모글로빈의 약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 혈액의 점도는 더 높아, 같은 양의 산소를 보내기 위해 더 큰 압력과 더 많은 펌핑 작업이 필요하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어의 순환계는 “강력한 펌프를 여러 개 두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즉, 저효율–고점도–저온 환경이라는 삼중의 제약을,
“심장을 늘리는 방식”으로 상쇄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헤모시아닌을 선택한 이유
그렇다면 이런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진화는 왜 그대로 두었을까요?
답은 환경 조건에 있습니다.
- 바다는 전체적으로 차고,
- 깊이로 내려갈수록 산소 농도는 더 낮아지며,
- 이런 환경에서는 오히려 헤모시아닌이 저온·저산소 조건에서 더 안정적으로 작동합니다.
다시 말해, 육상 동물에게 유리한 헤모글로빈 모델은
문어가 실제로 살아가는 환경을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불리한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문어의 파란 피와 세 개의 심장은,
“저산소·저온 바다에 최적화된 타협이자 해법”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세 개의 심장 옆의 아홉 개의 뇌
몸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
문어의 순환계를 이야기할 때, 신경계는 필연적으로 함께 따라옵니다.
문어는 심장 3개뿐 아니라 뇌 9개를 가진 동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몸 중앙에 위치한 주 뇌 1개
- 여덟 개의 팔마다 분포한 보조 신경절(‘팔의 뇌’) 8개
연구에 따르면 문어의 뉴런 중 약 60%가 팔에 분포합니다.
이는 이 동물이 단순히 “두뇌가 좋은” 정도가 아니라,
“팔로 생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 신경계와 순환계는 다음과 같이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 각 팔은 독립적으로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물체를 조작한다.
- 그 과정에서 미세한 힘 조절과 감각 처리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 세 개의 심장은 이 수많은 말단 작업을 뒷받침하는 에너지 인프라 역할을 한다.
정리하면 문어의 몸은 “중앙집권형 두뇌–단일 엔진” 구조가 아니라,
“분산형 신경계–다중 펌프”로 구성된 생체 네트워크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문어를 다시 볼 때 달라지는 것들
게으름이 아니라 계산된 전략
이제 우리는 문어가 천천히 해저를 기어 다니는 모습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느릿하고 여유로워 보일지 몰라도,
그 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계산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 저온·저산소 바다에서
- 구리 기반 파란 피가 효율적으로 산소를 나르도록 유지하고
- 세 개의 심장이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수행하며
- 아홉 개의 뇌가 팔과 몸통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구조
문어가 전력 질주를 자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순환계와 에너지 시스템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억 년 이상 이어진 진화의 시간은 이 존재에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남긴 듯 보입니다.
바다에서는, 빠름보다 버티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다음에 문어를 보게 된다면,
그 작은 몸 안에서 세 개의 심장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바다를 견디고 있다는 점을 함께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괴함이 아니라, 산소가 부족한 행성의 바다에서 지능과 생존을 동시에 성취하려 한 한 생물의 설계도에 가깝습니다.
Member discu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