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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팬데믹'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되어 1660년대에 영어로 발전하였다. COVID-19의 선언 이후 이 용어는 대중화되었으며, 팬데믹의 정의는 여전히 모호하다. 전문가들은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기 위해 생물다양성 보존과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팬데믹'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Photo by Manh LE / Unsplash

검증 출처

  • CDC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2,500-year Evolution of the Term Epidemic" (2006)
  • Etymology Online Dictionary
  • Oxford English Dictionary
  • 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 (NCBI)
  • University of Oxford, The Conversation

고대 그리스 의사가 남긴 용어, 2,500년을 건너 COVID-19 시대의 키워드가 되다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COVID-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했을 때, 전 세계는 이 단어의 무게를 실감했다. 하지만 이 용어는 대체 언제, 왜 만들어진 것일까? 그 여정은 우리를 2,500년 전 고대 그리스로 데려간다.

히포크라테스와 '에피데믹'의 탄생

이야기는 기원전 5세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된다. 그는 호메로스가 일반적 의미로 사용하던 'epidēmia'라는 그리스어를 의학 용어로 전환시켰다. 이 단어는 'epi'(위에, ~에)와 'dēmos'(사람들)의 조합이다.[1]

히포크라테스 이전에는 질병의 유행을 신의 분노나 천벌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질병을 관찰 가능하고 설명 가능한 자연 현상으로 접근했다. 그의 저서 「유행병에 관하여(Epidemics)」는 특정 지역과 시기에 발생한 질병의 양상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역학 문서였다.[1]

기원전 430년, 히포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아테네를 휩쓴 역병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질병의 전파 패턴, 증상, 사회적 영향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전염병 보고서로 평가받는다.[1]

1660년대, '팬데믹'의 등장

'에피데믹'이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질병 유행을 의미했다면, 더 광범위한 현상을 설명할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다. 1660년대, 영어권 의사들은 라틴어 'pandemus'를 차용해 'pandemic'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2]

이 용어는 그리스어 'pandemos'에서 유래했다. 'pan-'은 '모든, 전체'를 의미하고(인도유럽어 어근 *pant-에서 유래), 'dēmos'는 '사람들, 지역'을 뜻한다. 즉, pandemic은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이라는 뜻이다.[2]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은 이 용어가 에피데믹과 구별되는 방식을 명확히 한다. "에피데믹이 제한된 지역을 암시할 수 있는 반면, 팬데믹은 더 넓은 범위, 종종 전 세계적 확산을 의미한다"는 것이다.[2]

의학 용어에서 일상 언어로

초기에 'pandemic'은 주로 의학 문헌에서만 사용되는 전문 용어였다. 1853년에 이르러서야 명사형 "a pandemic disease"(팬데믹 질병)가 기록되기 시작했다.[2]

20세기 들어 이 용어는 점차 대중화됐다.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을 거치며 언론과 공중보건 당국이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적 단어는 아니었다.

진정한 전환점은 2009년 신종플루(H1N1)였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전 세계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일반인들도 이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됐다.

그리고 2020년 COVID-19가 왔다. 'pandemic'은 단순한 의학 용어를 넘어 시대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됐다. 구글 트렌드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 3월 'pandemic' 검색량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언어 진화의 패턴

흥미롭게도 팬데믹과 관련된 다른 용어들도 같은 어근을 공유한다. 'Endemic'(풍토병)은 'en-'(안에)와 'dēmos'의 조합으로, 특정 지역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질병을 의미한다. 2020년 WHO가 만든 'infodemic'(인포데믹)은 information과 epidemic의 합성어로, 잘못된 정보의 전염병적 확산을 표현한다.[3]

이러한 용어 형성 패턴은 'pan-' 접두사의 생산성을 보여준다. 19세기 이후 Pan-Slavism(1846), Pan-Americanism(1889), Pan-Germanism(1892) 등 국가·지역 정체성을 나타내는 용어들이 만들어졌다.[4]

정의의 모호성과 논쟁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팬데믹'의 정의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WHO는 팬데믹을 "새로운 질병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정의하지만, 구체적인 정량적 기준은 제시하지 않는다.[5]

얼마나 많은 국가에 확산돼야 하는가? 사망자 수는? 전염력은?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2009년 신종플루 당시 WHO의 팬데믹 선언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부는 제약회사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연구는 보다 포괄적인 정의를 제안한다. 단순히 지리적 확산뿐 아니라, 감염 가능성, 이환율·사망률 증가, 그리고 사회·경제·정치적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5]

이 기준으로 역사를 재검토하면, 서기 165년부터 2024년까지 총 22번의 팬데믹이 발생했다. 천연두(안토니우스 역병, 아메리카 정복), 페스트(유스티니아누스 역병, 흑사병, 제3차 페스트), 콜레라(7차례), 인플루엔자(여러 차례), AIDS,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들(SARS, MERS, COVID-19)이다.[5]

언어는 어떻게 위기를 담아내는가

옥스퍼드대학교의 언어학자 사이먼 호로빈은 "언어는 항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COVID-19는 우리에게 역학 관련 어휘를 집중 교육시켰다. 팬데믹, 에피데믹, 엔데믹의 차이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봉쇄(lockdown), 평탄화(flatten the curve) 같은 표현들이 일상어가 됐다.[6]

이는 인류가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우리는 두려움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을 이해하고 통제하려 한다.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 팬데믹을 위한 준비

역사는 팬데믹이 반복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오래된 단어와 계속 마주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용어의 기원이 아니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야생동물 감시 시스템 강화, 생물다양성 보존, 국제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5] 다음번에 WHO가 '팬데믹'을 선언할 때, 우리는 더 잘 준비돼 있을까?

2,500년 전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역병에 대해 이렇게 썼다. "미래에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이 기록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의 바람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역사를 기록하고, 용어를 이해하고, 교훈을 배우는 것. 그것이 다음 팬데믹에 맞서는 인류의 무기다.


  • CDC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The 2,500-Year Evolution of the Term ‘Epidemic’." 2006. cdc.gov. 용어 기원과 역사 개관.[1]
  • Etymonline. "Pandemic." n.d. etymonline.com. 어원 및 연대 표기.[2]
  • Oxford English Dictionary. "Pandemic." n.d. OED. 정의 구분 참고.[2]
  • 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 (NCBI). "Rethinking definitions of pandemics." 2024. 논의 및 정량 기준 제안.[3]
  • The Conversation. Simon Horobin. "How language captures crises." 2020. 옥스퍼드 대학교 언어학 칼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