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주는 사람’이 될 때 우리 뇌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
연말 나눔,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질까요?
연말이 되면 김장 나눔, 연탄 봉사, 푸드뱅크 후원 같은 ‘불우이웃 돕기’ 뉴스가 빠지지 않는다. 해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부터 연말까지 푸드뱅크, 노인 식사 배달, 각종 자선단체에 자원봉사자가 몰리는 이른바 ‘나눔의 계절’이 이어진다. AP통신이 정리한 연구와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이런 선행은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돕는 사람의 건강에도 분명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의 무료급식소 ‘셰퍼드스 테이블’에서 매주 점심 배식을 돕는 은퇴 화학자 알프레드 델 그로소는 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와 더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는 또 지역 산책로의 쓰러진 나무와 수풀을 정리하는 자원봉사에도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은퇴 후 경로식당 배식, 독거 어르신 안부 전화, 취약계층 공부방 봉사에 참여하는 50·60대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동 뒤에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심리·진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미국 베일러대학교 심리학자 사라 슈니트커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할수록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고,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을 하고 싶어진다”며 “감사와 관대함 사이에는 상승 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연말처럼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를 떠올리기 쉬운 시기에 나눔이 늘어나는 이유다.
세계 여러 종교와 문화에 자리 잡은 ‘감사와 나눔의 계절’도 같은 맥락이다. 버지니아대학교 발달심리학자 암리샤 바이시는 힌두교의 디왈리(Diwali), 이슬람의 라마단과 자선 문화, 불교 전통의 감사 의식 등을 예로 들며 “사람들이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감각을 되살리는 장치”라고 설명한다. 그는 “인류는 날카로운 발톱이나 빠른 속도 대신 협력 능력으로 살아남은 종”이라며, 남을 돕고 싶어지는 마음이 약함이 아니라 생존에 기여해 온 본능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선행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브리검영대학교 발달심리학자 지나이 넬슨은 기부·봉사·도움 행동이 단기적으로는 이른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로 불리는 도파민 분비 증가를 일으키고, 장기적으로는 삶의 의미와 목적 의식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분석한다.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우울감과 고립감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은퇴 후 미시간주에서 적십자 봉사를 시작한 전직 간호사 미아 셀런은 “타인의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드는 일을 하며 컴퓨터 사용, 소통 방식 등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있다”며 “이웃과 다시 연결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서도 봉사를 계기로 ‘제2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중장년층 사례가 늘고 있다. 직장 밖에서 새로운 역할과 관계망을 갖게 되면서, 노후의 정서적·사회적 건강 자산을 쌓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나눔이 꼭 거창한 봉사활동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 사회심리학자 라라 악닌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에서는, 오랜만에 연락이 끊겼던 지인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만으로도 관계 회복과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봐” 먼저 연락하기를 망설이지만, 실제로 연락을 받은 쪽은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악닌은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하는 것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연락을 진심으로 반가워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40~60대에게 나눔과 봉사는 건강·관계·노후를 동시에 관리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경제적 기부에 더해, 월 1회나 분기 1회라도 직접 몸을 쓰는 봉사를 더하면 신체 활동량을 늘리고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집이나 직장에서 30분 이내 거리에 있는 푸드뱅크, 노인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동물 보호소 등 ‘갈 수 있는 곳’을 미리 찾아 두는 것만으로도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연말에 집중되는 선행을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하지 말고, 생활 속 루틴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월 정기후원에 분기별 1회 현장 봉사를 더하거나, 매년 명절 전에는 쌀·식료품을 기부하는 식으로 자신만의 패턴을 만드는 것이 한 예다. “남을 돕는 일은 결국 자신의 건강과 관계, 노후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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