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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의 창조와 공학

2025년 8월, 과학계를 뒤흔든 발견이 발표됐다. 스톤헨지 중앙에 놓인 6톤짜리 제단석이 스코틀랜드에서 왔다는 것이다.
스톤헨지의 창조와 공학
Photo by Ana Paula Grimaldi / Unsplash

2025년 8월, 과학계를 뒤흔든 발견이 발표됐다. 스톤헨지 중앙에 놓인 6톤짜리 제단석이 스코틀랜드에서 왔다는 것이다. 거리로 따지면 750킬로미터. 5,000년 전 신석기인들이 이 거대한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이 질문 하나가 우리가 알던 선사시대 문명에 대한 모든 가정을 뒤집고 있다.

750킬로미터를 여행한 돌

영국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는 명확했다. 스톤헨지 중앙의 제단석을 구성하는 광물의 지구화학적 지문을 분석한 결과, 스코틀랜드 북동부 지역의 암반과 완벽히 일치했다.[1]

이전까지 학자들은 이 돌이 웨일스 지역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스톤헨지를 구성하는 다른 블루스톤들은 웨일스 서부 마이니드 프레셀리(Mynydd Preseli) 지역에서 채석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제단석만은 달랐다.

"놀라운 발견입니다." 엑서터대학교의 고고학자 수잔 그리니(Susan Greaney)는 말했다. "스코틀랜드 북동부, 어쩌면 오크니(Orkney) 지역일 수도 있습니다. 그곳은 신석기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1]

문제는 '어떻게'다. 6톤짜리 돌을 750킬로미터나 옮긴다는 것은 현대 기술로도 만만찮은 일이다. 5,000년 전에는 어땠을까?

빙하가 아니라 인간이 옮겼다

일부 학자들은 빙하 이동설을 제기했다. 빙하가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남부까지 돌을 실어 날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025년 7월, 애버리스트위스대학교(Aberystwyth University)가 이끈 연구팀은 이 가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2]

연구팀은 1924년 스톤헨지에서 발굴된 '뉴올 바위(Newall boulder)'를 X선 형광 분석, 현미경 분석, 표면 질감 검사로 재조사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빙하가 운반한 표석(glacial erratic)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이 돌은 웨일스 북부 펨브로크셔의 크레이그 로스-이-펠린(Craig Rhos-y-Felin)에서 의도적으로 채석된 유문암 조각이었다.

신석기인들이 직접 옮긴 것이다.

5,000년 전의 첨단 공학

2025년 10월, 스톤헨지 인근 에임즈베리(Amesbury)에서 새로운 발굴이 진행됐다. 버킹엄대학교의 데이비드 자크(David Jacques) 교수가 이끄는 팀은 5,000년 전 유물들을 찾아냈다. 부싯돌 도구, 중세 기와 조각, 그리고 스톤헨지가 세워지기 전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3]

"이곳은 수천 년 전에는 큰 강 한가운데 섬이었을 것입니다." 자크 교수는 말했다. "지구물리학 조사를 통해 발굴할 지점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메솔리식 에이번 계곡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3]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스톤헨지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곳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이고, 기술을 축적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할 수 있는 문화적 중심지였다.

바다를 통한 운반 가능성

그렇다면 어떻게 옮겼을까? 가장 유력한 가설은 '해상 운반'이다.

750킬로미터를 육로로 끌고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산과 강, 숲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바다를 이용한다면?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배에 돌을 싣고, 영국 서해안을 따라 내려온 뒤, 브리스톨 해협을 거쳐 에이번강으로 들어가면 스톤헨지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갈 수 있다.[4]

문제는 신석기인들이 6톤짜리 돌을 실을 수 있는 배를 만들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같은 시기 지중해와 북유럽에서는 이미 원거리 해상 교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었다

스톤헨지는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천문학적 지식, 공학 기술, 사회 조직력, 그리고 무엇보다 목적이 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물이다.

제단석이 스코틀랜드에서 왔다는 사실은 더 큰 그림을 보여준다. 5,000년 전 영국 전역에 걸친 네트워크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스톤헨지는 한 부족이 아니라 여러 지역 공동체가 협력해 만든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엑서터대학교의 그리니는 이렇게 말했다. "스코틀랜드와 남부 잉글랜드 사이의 연결고리가 이제 가설이 아니라 증명된 사실이 됐습니다."[1]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이 불분명하다.

왜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왔을까? 더 가까운 곳에도 좋은 돌이 있었을 텐데, 왜 7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가져왔을까? 제단석이 가진 상징적 의미가 있었을까?

누가 옮겼을까? 한 세대가 한 일일까, 아니면 여러 세대에 걸친 프로젝트였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됐을까? 6톤짜리 돌 하나를 옮기는 데만도 수백 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른 돌들은? 스톤헨지에는 블루스톤만 80개가 넘는다. 각각의 돌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옮겨졌는지는 여전히 연구 중이다.

5,000년 전 사람들에 대한 재평가

이번 발견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선사시대 사람들을 너무 과소평가해온 게 아닐까?

문자가 없었다고 해서 지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속 도구가 없었다고 해서 기술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5,000년 전 사람들은 별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거대한 돌을 정밀하게 배치하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공동체와 협력할 수 있었다.

스톤헨지는 그 증거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 비밀의 일부만 알아냈을 뿐이다.


출처

  • Nature (2024). "A Scottish provenance for the Altar Stone of Stonehenge"[1]
  • National Geographic (2024). "The mysterious origin of Stonehenge's altar stone might have been solved"[4]
  • BBC News (2025). "Volunteers find artefacts in dig near Stonehenge"[3]
  • Study in UK (2025). "New Research from Aberystwyth University Confirms Human Transport of Bluestones to Stoneheng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