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 실종사건: 작가가 사건이 된 11일 동안의 미해결 미스터리
아가사 크리스티 실종사건: 작가가 사건이 된 열하루의 미해결 미스터리
1920년대 영국은 추리소설의 황금기였다. 서점 진열대에는 누가, 왜, 어떻게 살해당했는지를 묻는 이야기들이 매주 새로 쌓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으로 이름을 알린 한 여성 작가가 있었다. 독자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책장을 넘겼지만, 1926년 12월, 영국 사회가 쫓게 된 이름은 책 속의 범인이 아니라, 바로 그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였다.
12월 3일 밤. 버크셔 주의 집에서 나온 크리스티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 날 새벽, 서리(Surrey)의 초크 채석장 근처 도랑에서 한 대의 자동차가 발견된다. 전조등은 꺼져 있고, 차는 도랑 가장자리에 걸린 채 멈춰 서 있다. 차 안에는 겨울 밤에야말로 가장 먼저 집어 들었어야 할 모피 코트와 개인 소지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추리소설의 1장이라면, 독자는 여기서 이렇게 적어두었을 것이다. “피해자가 스스로 사라질 생각이었다면, 왜 방한구를 두고 갔을까?” 경찰은 강에 몸을 던졌을 가능성, 누군가의 개입, 계획된 가출이라는 세 가지 서로 다른 프로트라인을 동시에 펼쳐놓고 수색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영국 전역은 하나의 거대한 실사판 추리소설 무대로 변한다. 경찰과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들판과 강가, 숲을 뒤지고, 혈흔 탐지견과 항공 수색까지 동원된다. 신문 1면에는 실종된 작가의 사진과 동선이 지문 채취 현장 사진처럼 연일 실린다. 독자들은 더 이상 책 속의 사건을 읽는 소비자가 아니다. 실종된 작가를 찾는 집단적인 추리 게임의 참여자가 된다. 언론은 그녀를 단순한 실종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의 미스터리 플롯으로 바꿔버린 인물처럼 묘사하며 사건을 소비한다.
반전처럼 보이는 장면은 열하루 뒤, 잉글랜드 북부 온천 휴양지인 해러게이트(Harrogate)의 한 호텔에서 열린다. 호텔 투숙객 명부에 적힌 이름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아니라 ‘테레사 니일(Teresa Neele)’. 이 성(姓)은 당시 크리스티의 남편과 관계를 맺고 있던 여성의 성과 같았다. 추리소설이라면, 독자는 여기서 굵은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용의자 주변 인물의 이름을 빌려 쓴 가명. 우연인가, 의도인가.”
발견 당시 크리스티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선명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사건에 관여한 의사들은 기억 상실과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언급한다. 일부 연구자는 이 열하루를 해리성 기억장애, 또는 정신적 충격이 만들어낸 보호 장치로 해석하려 했다. 반대로, 남편과의 갈등과 가명 선택을 근거로 이 사건을 “무의식적 복수극”이자 “극단적으로 연출된 감정 표현”으로 읽는 해석도 꾸준히 제기된다. 여기에 대중의 상상력이 덧붙여지면서, ‘신간 홍보를 위한 자작극’이라는 가설까지 퍼져 나갔다. 하지만 평판 리스크, 사건 이후에도 이어진 크리스티의 일관된 침묵을 감안하면, 연구자들은 이 가설을 설득력 낮은 이야기로 분류한다.
이 사건을 추리소설가의 시선으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된다. 동기는 여러 갈래로 제시되지만, 어느 하나도 최종 결론으로 격상되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크리스티는 자서전에서도 이 열하루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독자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챕터만 통째로 뜯겨 나간 셈이다. 남은 것은 경찰 기록, 언론 기사, 주변인의 증언이다. 우리는 이 조각난 단서들을 붙들고, 기억 상실이라는 가능성, 혼란 속 심리적 도피라는 가능성, 억눌린 분노의 표현이라는 가능성 사이를 왕복할 뿐이다.
그러나 미스터리는 반드시 화려한 결말을 가져야 하는 법은 없다. 이 사건이 오늘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모든 카드가 테이블에 올라온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카드 한 장—당사자가 직접 쓴 설명문—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추리소설가가 남긴 수많은 작품 가운데,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를 영원히 넘겨볼 수 없는 단 하나의 사건. 그래서 이 실종은 지금까지도 “작가가 직접 쓴 유일한, 그리고 완전히 미결로 남은 실물 사건 파일”로 기억된다.
이번 주 〈 1377 다이제스트〉는 이 열하루의 공백을 둘러싼 의학적·심리적 해석, 그리고 1920년대 영국 언론이 이 사건을 어떻게 소비하고 재구성했는지를 추적한다. 독자는 한 사람의 실종이 어떻게 미스터리, 스캔들, 그리고 집단적 상상력의 연료가 되었는지를, 마치 한 권의 장편 수사물을 읽듯 따라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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